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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커플스 리트리트] 휴가간 네 커플 앞엔 황당한 프로그램이···

사랑스런 두 아이를 둔 편안하고도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데이브(빈스 본) 로니(말린 에이커맨) 부부는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제이슨 신시아 부부의 갑작스런 발표에 적잖이 당황한다. 이들과 오래도록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던 조이 루시 부부 셰인과 트루디 커플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 네 커플은 제이슨 신시아 부부가 사랑을 확인하고 마음을 돌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지상 낙원'이라는 열대 휴양지 '에덴 리조트'로 1주일간 함께 휴가를 떠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휴양지에는 기대했던 제트스키과 스노클링 화려한 파티 대신 부부관계의 문제점을 찾고 회복하기 위한 황당한 프로그램들만이 네 쌍의 부부를 기다리고 있다. 부부들의 수련회를 총 지휘하는 마르셀(장 르노)의 지도 아래 우스꽝스러운 교육을 받는가 하면 심리상담가와의 원치않는 면담까지 강요받게 되자 '에덴 리조트'에 대한 커플들의 실망과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러나 그 사이 네 커플은 그 동안 모른 척 살아 왔던 부부간의 문제나 상처 감춰왔던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고 충돌해가며 '우리는 정말 어떤 부부인가' '우리 부부 사이는 지금 어떠한가'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가게 된다. '커플스 리트리트'(Couples Retreat)에는 사회적 안정과 책임감 헌신 등의 이름 아래 정작 일상 안에서 서로의 상태나 감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왔던 부부들이 이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 속엔 엄청난 사건도 눈에 띄게 독특한 캐릭터도 없지만 네 부부를 한 군데 몰아 넣었을 때 충분히 일어날 법한 잔잔한 에피소드와 사소한 대화들이 이어져 오히려 공감을 산다. 부부란 가정을 이뤄 공동의 삶을 이뤄가는 운명공동체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자 관계맺기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주연을 맡은 빈스 본과 존 파브로는 각본 작업에도 참여해 황당한 설정에서도 현실감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고민을 끌어내는 데 큰 몫을 했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보라보라 섬의 아름다운 자연과 장 르노의 어눌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보는 것도 '커플스 리트리트'가 가진 또 다른 재미다. 다만 영화 후반 네 커플의 갈등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성급히 마무리지어 버린 점은 안타깝다. 영화 중반까지 섬세하게 공들여 끄집어 낸 각 부부들만의 고민이 갑자기 시시해져 버리는 듯한 배신감마저 들기 때문이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2009-10-08

[영화 리뷰 - 인포먼트!] 파멸의 길로 빠져드는 '산업 스파이'

'잘 나가는' 젊은 기업인 마크 위티커. 1992년 포춘이 뽑은 500대 기업 안에 속하는 미국 ADM의 부사장으로 생물공학 박사 학위를 비롯하여 법과 관련된 학위 등을 소지하고 미국 기업 역사상 32살의 나이에 최연소 지역장으로 ADM에 채용되었던 전도양양했던 인물이다. 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주연 : 맷 데이먼·프랭크 웰커·멜라니 린스키·스콧 바큘라 장르 : 코미디 등급 : R 위티커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ADM의 '가격 단합' 음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점차 '산업 스파이'로 변해가고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영화 '인포먼트!(Informant!)'는 실제로 1992년부터 몇 년에 걸쳐 사내 정보를 비롯한 증거를 수집하여 FBI에 제공했던 잘 나가는 미국의 한 농산품 관련 회사 CEO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처음에는 '정의감'으로 스파이의 길을 걷기 시작하지만(무엇보다 아내의 권유에 의해)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고뇌하는 이중성을 들어낸다. 거기다 '샤프한 이미지'의 세련된 기업인이 아닌 어리숙하면서도 마냥 비난만 퍼붓거나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나중에는 자신의 출생 스토리까지 거짓으로 꾸며대는 어리석음 까지 들어낸다. 문제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독의 '연출'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공로가 컸던 FBI 협조자이자 정의 편에 섰었던 시대의 영웅인지 아니면 미숙한 판단으로 좋은 일을 하고도 죄값을 치루어야 했던 단순히 운 나빴던 인물인지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위티커는 이 모든 모습을 갖춘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트' 와 '실감'을 모두 보여주기 원했던 소더버그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 도대체 장르가 뭐야'란 식의 '오해'만 불러 일으킨다. 사실 소더버그 감독과 맷 데이먼의 만남은 그 자체 만으로 큰 이슈였다. 거기다 '본' 시리즈의 데이먼이 '산업 스파이'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라는 말을 다시금 확인했다. '오션스' 시리즈 이래 그렇다 한 작품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는 소더버그 감독은 근래 들어 '자신만을 위한 영화'를 제작한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정신병자인지 천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거대 식품회사의 중역인 위티커 역을 맡은 맷 데이먼도 '오션스' 시리즈의 캐릭터인 '라이너스'의 여운을 지우지 못했다. '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파격적인 변신은 기대하지 말자. 그러나 난해하기만한 영화는 실존했던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할 만한 이슈'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선 차별화된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장'이라는 삶의 진리를 반영하는 매력은 존재한다. 황준민 기자

2009-09-24

[영화 리뷰 -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과소비 풍자 가득한 아동용 3D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요리를 할 필요도 없고 마켓에 갈 필요도 없다. 생일날 원하기만 하면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맛있는 스파게티도 실컷 받아 먹을 수 있다. 감독 : 필 로드·크리스 밀러 주연 : 안나 페리스· 앤디 샘버그· 빌 하더·미스터 티 장르 : 애니메이션 등급 : PG 어릴 적부터 '발명왕'을 꿈꾸던 주인공 플린트(빌 하더 목소리). 엉뚱한 언행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왕따'지만 단 한번도 꿈을 접어본 적이 없다. 수년간 '음식을 만드는 기계' 개발에 몰두하던 플린트에게 어느날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 한 것이다. 컴퓨터에 원하는 음식을 입력시키기만 하면 하늘에서 수천인분의 음식이 떨어진다. 이 사건으로 플린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되고 도시는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떠 오른다. 그러나 과도한 것엔 언제나 문제가 따르는 법. 기계가 오작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늘에선 초대형 스파케티 폭풍이 불고 집채만한 미트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플린트와 친구들은 기계를 멈추기 위한 위험천만한 작전을 개시한다. 소니 픽처스와 컬럼비아 픽처스가 공동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Cloudy with a Chance of Meatballs)'는 아동 소설가 주디 바레트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진다'라는 '특이한 상상력'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파스텔톤의 귀여운 캐릭터와 흥겨운 음악 유쾌한 유머로 똘똘 뭉친 영화는 단순한 오락성을 넘어 과소비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풍자가 넘친다. 특히 넘쳐나는 음씩 쓰레기와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 얻을 수 있는 풍족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에게 '과욕'이 주는 재앙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아이맥스 3D'용으로 제작돼 입체감 넘치는 영상도 눈을 즐겁게 한다. 황준민 기자

2009-09-17

[영화 리뷰 - 국가대표] 점프 스키에 실어 나른 '감동 실화'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된다. 감독 : 김용화 주연 : 하정우·성동일·김지석·김동욱·최재환·이재응 장르 : 드라마·코미디 등급 : PG-13 상영관: 엠팍극장 감독으론 '스키점프'의 '스'자도 모르는 전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방종삼(성동일)이 임명되고 선수들로는 입양아 출신의 전 알파인 스키 주니어 미국 국가대표 밥 제임스(하정우) 나이트 클럽 웨이터 흥철(김동욱) 찌질이 고깃집 아들 재복(최재환) 소년 가장 칠구(김지석). 개개인 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모두 금메달의 따야만 하는 절막한 처지에 놓여있다. 연습장은 물론 보호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맨몸으로 훈련을 시작한 이들 '국가대표 선수들(?)'은 의지 하나로 버티며 독일 오버스트도르프 월드컵에 참여하게되고 우여곡절 끝에 동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게 되지만 무주시가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끝내 탈락하게 되면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해체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애정과 열정으로 가득차 있는 이들의 가슴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을 향해 마지막 비상을 준비케 한다. 영화 '국가대표'는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은 이들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따뜻한 '휴먼 드라마'다. '미녀는 괴로워'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던 김용화 감독은 사연 많은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집중력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곳곳에 장치된 '눈물'과 '폭소' 트랩도 완벽하게 작동하며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수준높은 특수효과는 따뜻한 스토리와 맞물려 더욱 빛을 낸다. 김감독은 한국영화 최초로 배우들의 스키점프 순간을 담기 위해 실제 스포츠 경기 중계에서 사용되는 캠캣(CamCat)을 도입 짜릿한 비주얼을 실감나게 포착했다. 특히 나가노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활약을 그린 30여분은 멀리 하늘에서 바라보는 앵글인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와 바로 옆에서 선수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밀착앵글을 섞어 긴장감과 생동감을 전하며 실제 올림픽 경기를 관전하는 흥분과 감동을 전한다. 작년 여름 '추격자'에서 연쇄 살인마역으로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한 하정우를 비롯 김지석 김동욱 최재환 등의 신인 배우들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뽐내며 영화의 완성도를 올리는데 기여했다. 배경음악도 훌륭했다.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관객들의 감성을 100% 끌어올렸다. 특히 메인 테마송으로 쓰인 밴드 '러브 홀릭스'의 '버터플라이'는 멜로디와 가사 모두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황준민 기자

2009-09-17

[영화 리뷰] 9·11을 보는 세가지 다른 영화

◇ '화씨 9/11' 2004년 개봉한 '화씨 9/11'은 가장 먼저 미국의 상처를 다룬 작품답게 9.11 사태 자체보다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의 다큐멘터리다. 집요한 추적으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골치 아픈 해외정책에 대해 해부용 칼을 거침없이 들이댄다. 특히 중동 국가들과의 연계성을 무시하고 곧바로 이라크 침공을 선택한 부시 대통령과 그의 측근에 대해 독설을 서슴치 않는다. 일부에서는 무어 감독의 주장이 너무 정부 비판적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화씨 9/11'은 9.11사태 이후 출품된 작품 중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잣대를 지닌 작품'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올리버 스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2005년작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1년 전에 개봉한 '화씨 9/11'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띤 작품이다. '화씨 9/11'이 다분히 정치적인 색깔을 들어 냈다면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이를 최대한 숨기고 대신 '미국인의 정서'를 최대한 들어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어루 만져 주고 자신의 파트너를 지켜주는 고귀한 정신을 강조했다. 영화에는 자신들에게 상처를 입힌 '공공의 적'에 대한 분노도 정부의 무능과 태만에 대한 실망도 없다. 다만 '어렵고 힘들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가 된다. 그것이 미국이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 이듬해에 개봉한 '플라이트 93'은 앞서 열거한 두 작품들에 비해 정치적인 요소가 가장 배제된 작품이다. 영화는 사건 당일 납치된 비행기 넉 대 가운데 마지막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편 안에 있던 승객들의 '위대한 희생'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풀어낸 '영웅 물'에 가깝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과연 그들이 저렇게 희생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한다. 하지만 위기 상황 속에서도 지도자를 세우고 의견을 모으고 실행에 옮긴다는 면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무너지지 않았다는 긍정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들 영화는 개봉 시기에 따라 각각 '9.11 사태에 대한 자가 분석'(화씨 9/11)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구심점 찾기'(월드 트레이드 센터) '희생에 대한 연민과 피해자의 영웅화'(플라이트 93)라는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황준민 기자

2009-09-10

[영화리뷰 -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 막장 특공대 '개떼들'의 나치 사냥

2008년 7월 2일 타란티노 감독은 '출판의 날'을 선포했다. 10년간 작업해 온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Inglourious Basterds)' 최종본이 완성된 날이기 때문이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브래드 피트· 다이앤 크루거· 멜라니 로랑· 크리스토프 왈츠 장르 : 액션·모험 등급 : R 상영관: 엠팍극장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치를 깡그리 죽여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결성된 '개떼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이라는 숙성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재키 브라운'부터 타란티노 감독과 작업을 함께 해온 프로듀서 필라 사본은 시나리오가 완성되자마자 넘치는 자신감으로 원하는 스태프들에게 하나씩 발송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최고다!"라는 감탄과 함께 오케이 사인이 수화기 너머로 넘어왔다. 시나리오를 받은 제작자 로렌스 벤더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후 내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집에서 시나리오를 한 번 읽은 뒤 곧바로 전화를 걸어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한 번 더 읽었다. 굉장히 흥분했다." 영화의 또 다른 아이콘은 브래드 피트다. 독일의 무차별적인 학살에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각오를 다지며 결성된 조직 '개떼들'의 중심엔 "나치 놈들 머리 가죽 100개씩은 벗겨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알도레인 중위역이다. 그는 사전 제작 단계에서부터 타란티노가 염두에 둔 배우였다. 그는 브래드 피트를 찾아 프랑스까지 날아가 직접 시나리오를 건넸고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 사실 브래드 피트는 타란티노가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선 그게 뭐든 간에 무조건 승낙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브래드 피트 캐스팅에 성공한 제작진은 의욕적으로 '개떼들' 멤버들의 캐릭터에 맞는 캐스팅을 이어갔다. 캐릭터들의 출신 국가에 맞춘 글로벌한 캐스팅에 우려 섞인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인터내셔널 시네마를 향해 한 발 다가간 것이다. 캐스팅만으로 굉장히 고무적인 작품이 될 거다"란 헤닝 몰펜터 프로듀서의 확신은 호주 출신 크리스토프 왈츠의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당당하게 입증됐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석 달이 채 안 돼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타란티노 감독의 머릿속에 이미 많은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던 덕분이다. 제작팀에 타란티노가 주문한 건 단 하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그림을 완벽하게 재현해 달라는 것이었다. "베를린의 빌딩 벽에는 아직도 총탄 구멍이 남아 있다. 곳곳에 전쟁의 흔적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로케이션 장소 중엔 히틀러가 지은 실제 나치 요새도 있었다." 이렇듯 제작진에겐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헌팅하기 위해 발품 파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감독과 스태프는 물론 배우들까지도 전쟁의 현장을 상기하며 촬영할 수 있었다. 영화는 여러 매력포인트가 존재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타란티노의 눈으로 보고 만든 전쟁 영화라는 점이 팬들의 기대치를 극한으로 끌어 올린다. 거대한 스케일 안에서 최고의 배우들이 타란티노와 함께 결성한 막장 특공대 '개떼들'의 활약은 과연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 그들이 진짜 나치 머리 가죽 100개를 다 벗겨냈는지 오늘 확인해보자. 이유진 기자

2009-08-20

[영화 리뷰 - 해운대] 160억원 들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내륙에서 먼 바다까지 어업을 나섰던 배 한 척이 거센 폭풍우에 휘말리고 그 배에 탑선해 있던 연희(하지원)의 아버지가 무거운 철망에 깔린다. 감독: 윤제균 주연: 설경구·하지원·박중훈·엄정화 장르: 모험·드라마 등급: PG-13 상영관: 엠팍극장 그를 구하기 위해 동료들이 안간힘을 쓰지만 무거운 철망은 꿈쩍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해 구조헬기에 탑승하게 된 만식(설경구)은 죽음을 방조했다는 그리고 그와 함께 병행되는 본질적 죄책감과 연희를 향한 모종의 감정을 가로지르는 연민으로 연희의 삶을 돌본다. '해운대'는 서사적 할당량에서 우위를 점한 만식과 연희의 사연 외에도 평행 나열되는 둘 이상의 관계를 확보하며 드라마의 너비를 벌린다. 쓰나미를 경고하는 지질학자 김휘(박중훈)와 그의 전부인 유진(엄정화) 만식의 동생인 해양구조대원 형식(이민기)과 서울에서 내려온 삼수생 희미(강예원) 그리고 연희의 동창이자 동네 백수건달인 동춘(김인권) 등 다양한 인물의 서사가 평행적인 시선으로 나열된다. 다양한 인물들이 제 각각의 사연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드라마의 너비는 확장된다. 쓰나미 이전까지의 드라마는 파괴를 위해 축조된 건물이나 다름없다. 진전되는 인물의 관계 속에서 한발씩 전진하는 사연이 거대한 재난 앞에서 일거에 전복되는 비극적 참상은 감정을 고양시키는데 분명 효과적이다. 서사의 층위를 쌓아 올리고 관계의 너비를 확장하던 드라마가 파괴적 재난 앞에서 일순간 무너지는 광경은 참담한 심경을 부른다. 특히 부산과 해운대라는 지정학적 입지는 국내 관객에게 이색적인 기시감을 부를 만하다.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를 통해 이국적 풍경을 바탕으로 둔 재난 스펙터클을 감상해온 국내 관객들에게 '해운대'가 선사하는 국내 입지의 재난 광경은 보다 생동적인 감정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파괴적 이미지가 클라이맥스로서 효과적인 스펙터클을 발생시킨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혹은 '한국형 재난영화'라는 위용처럼 '해운대'는 160억여 원을 투자한 대작이다. 거대한 쓰나미를 구현한 CGI(컴퓨터 그래픽 영상)은 분명 할리우드의 수준과 비교하자면 보다 떨어지는 결과물임에 틀림없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감안한다면 배려가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해운대'는 160억여 원을 들여 만든 드라마다. '해운대'에서 쓰나미의 역할이란 그 이전까지의 드라마를 전복시키기 위한 용도로서 기능한다. 생각해보자면 그 전까지의 서사는 너비를 벌릴 뿐 어떤 갈무리가 없다. 그저 한방의 이미지를 통해 서사적 구조가 일거에 무산되는 형식이다. 그 의도는 불순하지 않다. 다만 그 형태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거대한 자본을 투영해서 만들어놓은 인위적 이미지가 사실상 드라마를 파괴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다는 건 어딘가 괴상하다. 새로운 시도와 모험은 중요하다. 다만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환경에서 빚어질 결과물의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그 방식을 모방하고야 마는 욕망은 도전일까 허세일까.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과연 실제적 가치인가. 매년 여름마다 국내 극장을 독점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지 못할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면 과연 그 용도는 무엇에 있나. 그렇다면 과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닌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봐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드라마를 파괴하는 스펙터클 '해운대'는 30여 분의 스펙터클을 전시하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1시간 30여 분짜리 임시방편 드라마의 제단이다. 그게 '한국형 재난영화'라 불릴 만한 결과물이라고. 글쎄. 민용준 기자

2009-08-13

[영화 리뷰 - 시간여행자의 아내] 과거·미래 넘나드는 '판타지 로맨스'

시간여행을 하는 남자 헨리. 그는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지불식간에 과거나 미래의 어느 시간 속에 뚝 떨어지는 '시간 일탈 장애자'(CDP Chrono Displaced Person)이다. 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 주연: 에릭 바나·레이첼 맥 애덤스 장르 : 판타지·로맨스 등급 : PG-13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심리적 불안정 상태가 지속되면 순간 눈 앞이 흐릿해지면서 과거 혹은 미래로 알몸으로 순간 이동한다. 말 그대로 아무 소지품도 없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편안하고 계획적인 시간여행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현재 시간대로 돌아는 순간도 불현듯 찾아온다. 떨어진 시간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헨리는 있는 힘껏 달리고 훔치고 숨어야 한다. 오드리 니페네거의 원작 '시간 여행자의 아내'(Time Travellers's Wife)는 판타지의 얼굴을 한 로맨스 영화다. 영화는 헨리(에릭 바나)와 클레어(레이첼 맥 애덤스)의 시점을 오가며 과거와 미래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전개된다. 하지만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라는 측면에선 일관된 시간의 흐름을 지니고 있다. 중년의 헨리가 과거로 돌아가 어린 꼬마 클레어와 처음 만나는 때의 이야기가 몇 십 년 후 어느 박물관에서 클레어와 청년 헨리가 처음 만나는 장면 다음에 연이어 나오는 식이다. 6살의 어린이 클레어는 온갖 연령대의 헨리를 만나며 사랑을 싹 틔우는데 헨리는 이 작은 여자아이가 미래에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첫 만남부터 알고 있다. 두 주인공은 운명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서로 인내하며 사랑을 이어간다. 시간을 초월한다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설정이지만 인생자체가 '시간의 흐름'이기에 관객들로 하여금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꿈꾸어 보게 한다. 남녀가 만나 사랑하면서 흘러간 시간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시 돌아가고 혹은 넘겨버릴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황준민 기자

2009-08-13

[영화 리뷰 -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이병헌 열연···스토리는 '빈약'

마블 코믹스에서 서사화된 '지. 아이. 조: 전쟁의 서막(G.I. Joe: The Rise Of Cobra)'는 어느 슈퍼히어로들과 마찬가지로 코믹스와 TV시리즈를 통해 큰 인지도를 형성한 작품이다. 감독: 스티븐 소머즈 주연: 이병헌·채닝 테이텀· 데니스 퀘이드·시에나 밀러 장르 : 액션·모험 등급 : PG-13 상영관: 엠팍극장 하지만 액션 피규어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에 서사의 옷을 입히고 코믹스의 시장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지. 아이. 조'는 기존의 코믹스 슈퍼히어로들과 출신 성분이 다른 작품이다. 액션 피규어로 구체화된 캐릭터들에게 세계관을 마련해주고 캐릭터의 활약상을 전시한다. 코스튬히어로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갖춰 입고 캐릭터의 개성을 대변하는 무기를 소지한 캐릭터들의 외형만으로도 캐릭터에 얽힌 사연이 만들어지고 화려한 액션 신이 예감된다. 마블코믹스가 'G. I. JOE'를 코믹스의 세계관에 전시한 것 역시 다양한 캐릭터들이 발생시킬 이야기의 잠재력에 주목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코믹스와 TV시리즈가 액션 피규어라는 뼈대에 서사의 살점을 바르는 작업이었다면 영화는 그 피부에 보다 화려한 의상을 착용시키는 과정과 같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 아이. 조'는 전시적 욕망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현란한 속도감과 거창한 스케일을 원투 펀치로 삼아 현란한 액션신의 공세를 퍼붓는 '지. 아이. 조'는 킬링타임의 목표를 적중하기 위한 이미지의 공세가 대단하다. 특히 단순 명확하게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자리를 잡은 캐릭터들의 대립구도는 손쉽게 대결의 이미지를 선점함으로써 액션을 연출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된다. 캐릭터의 다양성을 통해 다채로운 액션 이미지를 전시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지. 아이. 조'의 기본적인 장점에 가깝다. 히어로 코믹스의 요소들을 죄다 차용한 듯한 '지. 아이. 조'는 액션 블록버스터가 전시할 수 있는 총아적 이미지를 선사한다. 문제는 스토리다. 전시적 욕심에 비해 저능한 스토리가 영화의 오락적 묘미를 감퇴시킨다. 볼거리를 제공하는 거창한 액션 시퀀스를 지속적으로 떠내려 보내지만 이미지의 맨틀 역할을 하는 스토리가 잦은 균열을 일으키는 덕에 전반적인 영화의 완성도도 진동하는 기분이다. 열악한 스토리가 이미지의 쾌감을 증발시킨다. 때때로 심각하게 유치해지는 이야기가 화려한 액션신마저 저급한 수준으로 몰락시킨다. 가장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말할 수 있는 파괴적인 파리 추격신은 비윤리적인 인상마저 남긴다. 저능한 수준의 스토리에 못지 않게 악질적인 자만으로 완성된 이미지가 오락적 쾌감이라는 편견을 타고 스크린에 전시된다. 하지만 그 이미지조차도 딱히 발전적이지 않다. 이미 수많은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만들어낸 지난 이미지들을 나태하게 나열할 뿐이다. 마치 두뇌 없는 액션 피규어들의 현란한 움직임을 무작위로 감상하는 느낌이다. 민용준 기자

2009-08-06

[영화 리뷰 - 퍼펙트 겟어웨이] 신혼여행지서의 살인사건···액션·로맨스·공포 '골고루'

막 결혼식을 치른 클리프(스티브 잔)와 시드니(밀라 요보비치)부부는 하와이의 해변에서 다이나믹한 신혼여행을 꿈꾸며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감독 : 데이빗 토히 주연 : 밀라 요보비치· 스티브 잔· 티모시 올리펀트· 키엘 산체스 장르 : 스릴러·액션 등급 : R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며칠 전 해변가에서 한 신혼부부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름끼치는 뉴스를 접하고 불안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생애 최고의 여행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에 여정을 이어가고 우연히 연인관계인 닉(티모시 올리펀트)과 지니(키엘 산체스) 커플과 만나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미군 특수부대 출신인 닉의 거친 말투과 어딘가 모르에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지니의 행동은 클리프와 시드니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목적지인 해변가에 도착하면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진실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퍼펙트 겟어웨이'(A Perfect Getaway)는 액션 로맨스 스릴러 공포 반전 추리 복수 등 갖가지 요소가 골고루 스며든 영화다. 하와이의 깊은 산중이라는 현실과 도피의 중간지점에서 생면부지의 두 커플이 만나고 그들이 공유하는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누가 살인사건의 범인이고 피해자인가'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물론 최근 스릴러 영화들이 '반전'이라는 요소를 빼먹지 않고 사용하기에 스릴러 팬들이라면 처음부터 누가 진짜 범인인가 손쉽게 맞출 수도 있지만 감독은 친절하게도 '디코이'(Decoy)를 심어놓아 눈치 빠른 관객들이라도 한 번쯤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액션신은 아드레날린을 뿜게 만든다. 총 대신 칼 화살 도끼 등 구식무기를 이용한 전투신이 주를 이루며 원초적인 폭력을 강조했다.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은 관객들로 하여금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시원한 복수극으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는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쾌감도 선사한다. 한가지 옥의 티가 있다면 반전의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서 애매모호한 해석. 왠만큼의 집중력이 없다면 한 번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100% 이해하기 힘들다. 황준민 기자

2009-08-06

[영화 리뷰 - 퍼니 피플(Funny People)] 무명 코미디언의 '고생 끝 행복 시작'

스탠드 업 코미디언이 꿈인 아이라(세스 로건)는 뛰어난 유머감각에도 불구하고 '찌질한(?)' 성격 때문에 만년 무명의 설움을 겪는다. ■감독 : 주드 애퍼토우 ■주연 : 애덤 샌들러·세스 로건 ■장르 : 코미디 ■등급 : R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스탠드 업 코미디계의 대부이자 유명 배우인 조지(아담 샌들러)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조수로 일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외치며 조지의 조수로 일하게된 아이라는 조지의 코미디쇼의 대본을 대신 작성해주고 같이 쇼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재능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조지에게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혈액이 말라가는 불치병이 그 것. 조지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인 옛 애인 로라(레슬리 만)와 재회하게 되고 옛 감정이 되살아 나면서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는다. 그러나 아이라의 실수로 로라의 남편인 클라크(에릭 바나)가 이들의 외도 사실을 알아 버리면서 조지와 아이라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이들이 함께 창조했던 '코믹 아이디어'는 이 둘을 다시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한다. 코디미 영화계의 새로운 실력자 주드 애퍼토우 감독이 3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 '퍼니 피플(Funny People)'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확실히' 재미있다. 감독이 심어 놓은 '유머 트랩'은 작동해야 하는 시기에 정확히 작동하며 관객들의 배꼽을 흔들어 논다. 샌들러의 연기도 흠잡을 때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애퍼토우 감독과 샌들러의 조합은 이들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마치 스테이크와 생선초밥을 동시에 먹는 느낌이다. 애퍼토우 감독은 자신이 '사단'으로 칭하는 배우들(세스 로건.조나 힐.스티브 캐럴.제이슨 시걸 등)과의 환상적인 호흡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코미디 관'을 창조해왔다. 그러나 애덤 샌들러도 일개 배우가 아니다. 샌들러는 이제까지 수많은 배우들과 함께 '샌들러 식 코미디 관'을 확립해온 최고의 코미디 배우 중 하나다. '사공이 둘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물론 영화의 사공은 애퍼토우 감독이지만 샌들러도 '사공 급 배우'다. 다행히 배는 산으로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순풍에 돛단 듯 질주하진 못한다. 황준민 기자

2009-07-30

[영화 리뷰 - 박쥐] 숨겨진 욕망에 몸부림치는 '뱀파이어 신부님'

병원에서 근무하는 신부 상현(송강호)은 환자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절망한다. 감독 : 박찬욱 주연 : 송강호·김옥빈 장르 : 스릴러·드라마 등급 : R 상영관: 엠팍극장 고민 끝에 상현은 '생명'을 구해야 하는 신부로서의 의무를 다하기로 결심하고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불치병 백신개발 실험에 자원하지만 실험 도중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싸늘한 시체로 변한다. 그러나 사망 직전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기적처럼 '부활'해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람의 피를 빨아야 살아갈 수 있는 '뱀파이어'로 변한 채. 상현이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를 '성인'으로 간주하는 무리들로부터 추앙을 받지만 사실 그는 살인 욕망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친구 강우(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게 되고 상상하지도 못할 피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박쥐(Thirst)'는 이미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으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박찬욱의 최신작으로 제작 초기부터 국내외 팬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켕'의 플롯에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접목시킨 '박쥐'는 신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인간이 뱀파이어가 돼 숨겨진 욕망을 발산하고 씻을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는 원작의 플롯을 바탕으로 했다. 영화를 이어가는 거대한 축은 '딜레마'다. 지옥보다 끔직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피를 갈구하는 태주 눈을 뜰 수만 있다면 기꺼이 평생의 소신을 던져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 시각장애인 신부(박인환) 무엇보다도 타인의 생명을 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스스로의 욕망과 맞부딪치며 주인공 상현은 고뇌하고 또 고뇌한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딜레마를 표현하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특히 상현 역의 송강호와 태주 역의 김옥빈의 연기는 캐릭터를 완전히 녹여서 담아낸다. 서양의 문화코드인 '뱀파이어'는 몇 몇 특징 만을 제외하고 박 감독만의 캐릭터로 재창조된다. 상현은 햇빛을 두려워하고 피를 갈구하는 면에서 뱀파이어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채 짐승처럼 피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생존을 위해 타인의 피를 필요로 하지만 식물인간인 환자의 링거 주사를 통해 피를 마시는 등 나름 합리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신경질적이면서도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스타일도 이어진다. 태주의 덜 떨어진 남편 보드카를 물컵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키고 트로트만 듣는 시어머니 일본식 가옥안의 한복가게에서 매주 벌어지는 마작판을 찾는 이웃들은 컬트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유머와 공포를 동시에 선보인다. 영화는 새로운 시도와 기존의 장점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만 이전의 작품들에 열광하는 팬들에게는 다소 싱거울 수 있다.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이 주는 강렬한 이데올로기의 충돌 '올드보이'의 스펙터클과 반전 '친절한 금자씨'의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서술같은 만족을 안겨주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쥐'를 통해 박 감독은 오랫동안 기억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그리고 그의 시도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황준민 기자

2009-07-30

[영화 리뷰 - 어글리 트루스] '변덕쟁이 여자' 길들이기

로맨틱 코미디는 많은 여성 팬들을 보유한 장르의 영화다. 남녀의 미묘한 성격차이를 바탕으로 한 '유머 트랩'과 훈훈한 '해피엔딩'은 여성적인 감성에 특히 어필한다. 감독 : 로버트 룩케틱 주연 : 캐서린 헤이글· 제라드 버틀러 장르 : 로맨틱 코미디 등급 : R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사들은 작년부터 시작된 불경기로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여되는 작품의 제작을 줄이는 대신 큰 돈 안들이고도 적당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로맨틱 코미디물 제작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섹스 앤 더 시티'로 시작된 '여성전용' 영화 제작붐이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프로포즈' 등의 영화들은 박스오피스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려왔다. 그러나 여성들을 위한 배려의 수위가 높은 이들 작품들은 남성 관객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금발이 너무해' '몬스터 인 로' '21'에 이어 4번째 작품 '어글리 트루스(Ugly Truth)'를 발표한 로버트 룩케틱 감독은 '300'의 레오나이더스 왕으로 출연해 '마초맨'의 극치를 보여줬던 제라드 버틀러를 '수혈(?)'해 굵직한 남성성을 심으며 밸런스를 맞추었다. 마이크는 애인이 없는 여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심야 토크쇼의 사회자. 매일 매일 시청률 저조에 시달리는 아침방송 프로듀서인 애비(캐서린 헤이글)는 새롭게 시작한 토크쇼 '어글리 트루스'의 진행자로 마이크가 오게되자 일상이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만년 싱글로 완벽한 애인을 찾아 해메이는 애비에게 무례할 정도로 여성을 비하는 마이크는 그야말로 '최악의 남자'. 그러나 마이크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인 의사 남자친구를 차지하게 되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 지지만 애비는 결국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마이크라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의 백미는 마이크가 애비를 '남자들이 좋아하는'여자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이다. 마이크는 편집증에 변덕이 심하고 남자의 진심보다는 조건을 따지는 전형적인 '재수없는 여자'(마이크의 설명을 빌리자면)인 애비를 차근차근 조목조목 예를 들며 실전훈련을 통해 완벽하게 바꿔놓는다. 루케틱 감독는 이 과정에서 번뜩이는 위트와 유머는 물론 과감한 성적 요소를 담아 관객들의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날려 버린다. 아쉬운 부분은 '만남-갈등-반전-해피엔딩'이라는 전형적인 구도를 깨지 못했다는 점. 그러나 아름다운 새크라멘토의 하늘을 배경에서 펼쳐지는 '귀엽고 훈훈한 엔딩'은 뻔한 전개에서 오는 심심함을 커버해준다. 황준민 기자

2009-07-23

[영화 리뷰 -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그가 돌아왔다···

더욱 강력해진 어둠의 세력은 마법학교 호그와트는 물론 머글 세계(마법사가 아닌 보통 인간들의 세상)까지 위협해오고 위험의 기운을 감지한 덤블도어 교수(마이클 갬본)는 다가올 최후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해리 포터와 함께 악의 제왕 볼드모트를 물리칠 만반의 준비를 취한다. 감독 : 데이빗 예이츠 출연 : 다니엘 래드클리프·엠마 왓슨·루퍼트 그린트·마이클 갬본 장르 : 액션·모험 등급 : PG 상영관 : 엠팍극장 해리 포터 시리즈의 6번째 영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는 '어린이용 영화'라는 접두사를 벗어던졌다. 주인공들의 외모도 크게 변했다. 1편 '마법사의 돌'(2001)부터 해리를 연기해온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스무살 론을 연기한 루퍼트 그린트는 스물 한 살 헤르미온느의 엠마 왓슨은 열 아홉 살이 되어 당당히 성인의 반열에 들어섰다. 악의 제왕 볼토몰트를 죽이도록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인 포터의 정신적 성숙과 론과 헤르미온느와의 진지한 사랑도 각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내외적 성숙에 힘입어 현실감을 더했다. 전편 '불사조 기사단'은 산만한 스토리라인과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했다. 하지만 6편에서는 명확한 진행이 관객들의 이해를 도와 몰입도를 높인다. 전편에 이어 다시 한 번 메가폰을 잡은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해리와 말포이의 마법 대결 화염에 휩싸인 론의 집 장면 등을 통해 클라이맥스를 향해 천천히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전체 시리즈 중 액션신이 가장 미흡 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편보다 성숙해진 주인공들이 펼치는 내면의 연기는 영화 전체에 기품을 불어넣었다. 해리와 친구들은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1부와 2부로 나뉘어 상영되는 시리즈의 마지막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로 돌아와 볼드모트와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 황준민 기자 ■주인공들의 러브라인? 2007년 완결된 소설을 독파해 이야기의 전말을 꿰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애틋하게 6편을 기억할 것이다. 악의 세력과 최후의 일전을 앞둔 상황에서도 주인공들 사이에 피어나던 그 풋풋한 ‘러브라인’을. 우선 우리의 주인공 해리. 론의 여동생 지니 위즐리에게 끌린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 다투더니 미운정이 깊어졌나 마침내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한창 가슴 설렐 나이 8년을 스크린에서 보낸 세 주인공. 비록 스크린이지만 그들에게 사랑을 허(락)할 만하다. 이송원 인턴기자

2009-07-16

[새영화 - 브루노] 출세 위해 동성애자 포기하려는데···

오스트리아 최고의 '패션 리포터'를 자칭하는 브루노. 어느날 우연한 방송사고로 인해 오스트리아 연예계에서 퇴출을 당한 그는 세계 연예사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기기로 결정한다. 감독 : 사샤 바론 코언 출연 : 사샤 바론 코언·앨리스 에반스 장르 : 코미디 등급 : R LA에 도착한 부루노는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며 할리우드 스타들을 섭외해보지만 그 어떤 스타도 그를 원치 않는다. 이유는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자유분방한 부루노의 행동 때문. 뼛속까지 동성연애자인 브루노의 언행은 스타들로부터 반감을 사며 '기피인물 1호'로 낙인 찍힌다. 결국 무일푼 신세로 머물던 호텔에서 쫓겨난 브루노는 '할리우드 데뷔'라는 꿈을 이루려 동성연애자임을 포기하고 보통의 남자로 돌아가려는 독한 다짐을 한다. 그러나 평생을 동성연애자로 살아온 브루노의 결심은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2006년 5월 깐느 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상상을 초월한 블랙코미디로 전세계를 발칵 뒤집은 영화 '보랏'의 주인공 사샤 바론 코언이 새 영화 '브루노(Bruno)'로 돌아왔다. '브루노'는 전작인 '보랏'과 비슷한 형태의 스토리라인을 지녔다. 주인공이 카자흐스탄 출신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평범한 남성에서 동성연애자로 바꿨을 뿐이다. 물론 미국의 문화를 배배 꼬아 능멸했던 코언의 칼날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있다. 한가지 다른 점을 꼽자면 '성'이라는 주제를 코언 특유의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담아 마구 버무렸다는 점. 1시간 20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쏟아져 나오는 짙은 성적 표현과 풍자는 말 그대로 '상상'을 불허한다. 일부 장면들은 포르노 영화보다도 선정적이다. 그러나 '재미' 하나 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물론 전작인 '보랏'을 보며 배꼽을 잡았던 '취향'을 지닌 관객들에 한해서다. 배급사인 유니버설이 4억2500만달러에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 국가 배급권을 사들였을 정도로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황준민 기자

200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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